가문을 빛낸 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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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계공(寒溪公) 휘 홍록(弘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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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계공(寒溪公) 휘 홍록(弘祿)의 묘와 재실  

정읍시 칠보면 반곡리 부곡동록 축좌(釜谷東麓 丑坐)

 

자(字)는 경안(景安) 목사공 휘 책(策)의 7세손이요, 부제학 휘 비장(比長)의 종증손(從曾孫)이다.

임란을 당하여 전주(全州) 사고(史庫)와 경기전(慶基殿)의 위급함을 알고 참봉 오의(吳義) 당질(堂侄) 손승경(孫承憬)과 더불어 태조(太祖)의 어진(御眞)과 왕조실록(王朝實錄)등을 내장산 용굴암(內藏山 龍屈庵)에 옮겨 수호하고 이어서 더 안전한 곳을 찾아 아산(牙山) 강화(江華) 묘향산(妙香山)으로 옮기는 등 총력을 다하여 수호하였다. 임란중에 춘추관(春秋館) 성주(星州) 충주(忠州) 사고의 실록은 다 탔지만오직 전주사고의 실록만이 보전될 수 있었던 것은 오로지 공의 노력의 덕이라고 밖에 생각할 수 없다.뒤에 의주 행궁(行宮)에서 왕을 알현하고 중흥육책(中興六策)의 시무책(時務策)을 건의하여 왕으로부터 별제(別提)의 벼슬을 받았으나 나아가지 않았다.정읍시 태인(泰仁)의 모충사(慕忠祠)와 람천사(藍川祠)에 배향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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