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문을 빛낸 인물

가문을 빛낸 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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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야공(僕射公) 휘 습경(襲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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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의 문신(文臣)이다 -  ? ~ 1251년(고종 38년)

초명은 습경(襲卿) 일휘(一諱) 손변(孫卞)이다. 과거에 급제하여 천안부판관(天安府判官)으로 나가 치적이 드러나 공역서승(供驛署丞)에 특진되었다. 1226년(고종 13) 금나라의 우가하(亏哥下)가 몽고군으로 변장하고 의주, 정주(靜州-지금의 신의주지역)지방에 침입해오자 예부원외랑(禮部員外郞), 서북면병마판관(西北面兵馬判官)으로서 병마부사(兵馬副使) 김희제(金希磾)와 함께 출전, 압록강을 넘어 석성(石城)까지쳐들어가 적을 패몰시켰는데 이때에 읊은 칠언고시(七言古詩)가 「동문」에 수록되어 전한다.

그뒤 예부시랑(禮部侍郎)에 된후 누명으로 섬에 유배되었다가 곧 경상도안찰부사(慶尙道按察副使)로 회복되었다. 이때 부모의 유산으로 일어난 남매간의 송사(訟事)를 지혜있게 해결한 일화는 고려시대 재산상속에 관한 중요한 사료이다.

1236년 판소부감사(判小府監事)로서 서북면지병마사(西北面知兵馬事)에 임명되고 1242년 판합문사(判閤門事), 삼사사(三司使), 동궁시독사(東宮侍讀事) 그리고 이듬해 전라도순문사(全羅道巡問使)에 올랐다. 1248면 추밀원사(樞密院使)로서 몽고에 다녀왔으며 벼슬이 수사공상서좌복야(守司空尙書左僕射)에 이르렀다. 업무처리에 능하여 명성이 있었음에도 청요직(淸要職)에 오르지 못하였으나 이에 개의치않는 강직한성품이었다고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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