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문을 빛낸 인물

가문을 빛낸 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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첨정공(僉正公) 휘 수산(壽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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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소 사진

경남 창녕군 고암면 억만리

 

조선초기 세종~세조때 통사(通事) 한글창제의 숨은 공신이다. 자(字)는 자후(子厚) 재호(齋號)는 무본(務本)이다. 조부는 약수(若水)이고 부는 억(億)이며 첨정공파(僉正公派)의 파조(派祖)이다

세종 27년 행 사용(行 司勇)으로서 집현전 부수찬(副修撰) 신숙주(申叔舟)와 성균관 주부(注簿) 성삼문(成三問)과 함께 한글의 기초가 되는 홍무운(洪武韻)에 관하여 묻기위하여 요동(遼東)에 귀양온 황찬(黃瓚)을 만나고 돌아왔다.

문종 즉위년(1450년)에는 성절사(聖節使)로 명나라에 가서 정통 황제의 조서를 가지고 돌아왔고, 세조1년(1455년) 봉례(奉禮)로서 원종공신 3등에 녹훈되었다. 세조9년(1463년) 판사역원사(判司譯院事)로 또 이듬해에는 진응사(進鷹使)로써 명나라에 다녀왔다. 재호(齋號)는 요동에서 황찬(黃瓚)을 만나고 돌아올 때 황찬(黃璨)이 무본(務本)으로 지어주었고 문인(門人) 밀운(密雲)으로 하여금 모표(毛彪)의 붓으로무본재(務本齋)라는 세 글자를 전서(篆書) 대자(大字)로 쓰게하고, 또 서문(序文)까지 직접 지어주었다고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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