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문을 빛낸 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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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사공(牧使公) 휘 책(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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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로재(履露齋)  

보성군 노동면 금호리 삽고개(寶城郡 蘆洞面 錦湖里 揷高蓋)

 

공(公)은 군사공 휘 영(榮)의 5세손이고 의주목사 휘 귀린(貴麟)의 장자(長子)이고 목사공파의 파조(派祖)이시다. 고려말에 문과(文科)에 급제하여 수주목사(현 부천지역)를 지냈는데 이성계의 역성혁명(易姓革命)에 불복(不服)하여 참변을 당하였다. 그의 장자(長子) 헌납공 검경(儉敬)과 차자(次子) 유경(有敬)형제도 보성(寶城)에 유배되었는데 장자 검경은 태종(太宗)의 회유를 끝까지 불응해 나주 향리로 추핵을당하였다. 이에 공의 배위인 숙부인 원주원씨가 三子 계경(季敬)과 가솔을 거느리고 차자(次子)유경(有敬)의 적소(謫所)인 전남 보성군 노동면 금호리 대여촌에 정착하여 600년동안 집성촌을 이루어 밀양손씨 최대의 세거지가 되었다. 公의 묘소는 경남 창원 북오동촌이라 구보(舊譜)에 전하며, 전남 보성군 금호리 대여촌에는 公의 단(壇)과 배위(配位)인 원주이씨(原州李氏) 묘가 있다.

 

위 사진의 재실(齋室)은 목사공(牧使公) 휘 책(策)과 배(配) 원주이씨(原州李氏)의 후손들이 음력 10월 15일이면 전국에서 모여들어 선조들의 음덕(蔭德)을 기리는 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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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목사공(牧使公)-휘-책(策)의 단(壇)과 배위 숙부인(淑夫人) 원주이씨(原州李氏)의 묘 全景

  

고려(高麗) 말 수주목사(樹州牧使)를 지내던 휘 책(策)공은 이성계(李成桂)의 정권찬탈(政權纂奪)을 보고 그 부당성을 지적하다 이방원(李芳遠)에게 피살되어 영원한 충신으로 역사에 남았다. 묘영(墓塋)이 실전되어 후손들이 단(壇)을 모아 향사를 올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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