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양손씨유래

밀양손씨유래

▣ 손씨초강사적(孫氏初降事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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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미산 (옛날에는 이산)

 

삼국유사(三國遺事)에 의하면 옛날 진한(辰韓)땅에 육촌(六村)이 있었는데 이 가운데 세번째 기록에 무산대수촌(茂山大樹村)이 있고 촌장(村長)에는 구례마(俱禮馬)로 처음 이산(伊山)에 내려와 모량부(牟梁部) 손씨(孫氏)의 조(祖)가 되었다고 한다. 즉, 손씨(孫氏)의 원조(元祖)가 된 것이다.

동국사략(東國史略)에서는 조선(朝鮮)백성이 동해빈(東海濱)에 사는데 육촌(六村)으로 나뉘어 진한의 육부(六部)가 되었다고 하였다. 그리고 육부(六部)가 알천(閼川)에 모여 상의하여 임금이 없어서 백성(百姓)이 다 방종하고 무례하니 유덕한 사람을 군주로 선출키로 하고 박혁거세를 옹립하여 임금으로 모시고 서라벌에 도읍을 정하였다 했다. 이 때가 단기 2277년 (서기전 57년)이다.

그리고 동국통감(東國通鑑)에는 신라유리왕(新羅儒理王) 9년 단기 2365년 (서기 32)에 육부명(六部名)을 고쳐서 대수부(大樹部)를 모량부(牟梁部)로 하고 성씨(姓氏)를 손씨(孫氏)로 사성하였다.  

 

 

▣ 입덕묘(立德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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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육부전 內 입덕묘

 

진한(辰韓) 6부촌장(六部村長)을 모신 재실로 제3대 유리왕(儒理王)에 의하여 손씨(孫氏)의 사성을 받으신 휘 구례마(俱禮馬)는 시호(諡號)는 충렬군(忠烈君)이요 후에 문의왕(文義王)에 추봉되었다.

신라 개국공신(開國功臣)들의 공덕을 기리기 위해 서기 1975년 대한민국 박정희 대통령(大韓民國 朴正熙 大統領) 치하(治下)에 이르러 경주 남산(南山) 아래(下)에 입덕묘(立德廟)를 세워서 육부촌장(六部村長)의 위패를 모시고 매년 음력 8월 17일을 기하여 향사(享祀)를 모시고 있으며 홍익문(弘益門)과 대덕문(大德門)이 있고 관리사무소까지 병설되어 있으며 광대(廣大)한 묘역(廟域)으로서 성지화(聖地化)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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